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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4일 연세대학교 가톨릭 학생회 뉴맨에서 “히브리 민중사”라는 책으로 세미나를 했다.
역시나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느낀 점 그리고 더 이야기하고 싶은 점을 정리하여 뉴맨 홈페이지(http://www.newman.or.kr)에 올려본다.




-반성-
우선 이상한 논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여러분들을 혼란스럽게 해 드린 점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흥분(?)되는 일이 있어서, 그것을 잊어버리려 하다보니 그 흥분이 다른 쪽으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신앙에 대한 논의-
신앙에 대한 논의 좋았던 것 같습니다.(아주 개인적인 의견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커리에 있는 내용을 접목시켜 이야기 하기엔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커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 자체는 아주 긍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학생회에 있어서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모임과 같은 사업을 통해 1, 2번이 아니라, 가톨릭 학생회의 모든 활동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차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뉴매니즘[?]도 “…신앙으로 나아가 자신을 성화하고 나아가 사회에…”였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물론 어제 말씀 드렸던 것 처럼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 것입니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 일지도 모르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노력입니다. (“합의입니다”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완벽한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한 노력은 서로를 발전 시킵니다. 뉴매니즘이 말하는 성화이지요.

사회에 대한 고민, 현실적인 실천에 대한 고민 역시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다만, 신앙인은 신앙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 모든 것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고민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신앙, 믿음 그리고 실천-
하느님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와 함께하신 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는 앎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믿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앎이 곧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란불에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떻게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호등에 대한 믿음을 비교하냐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그러한 생각도 주님을 믿고 있는 사람에게나 통할 뿐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는 신앙을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의 믿음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연결 될 테니까요.

어제 우리는 서로의 형식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서로의 믿음을 의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믿음, 더 작은 믿음, 저와같이 불경스러운(?) 믿음, 성스러운 믿음 등 여러가지 믿음을 보았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지요.(여기서의 믿음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기 보다는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실천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서로의 믿음을 키워 주었으면 합니다. 미사에 데리고 갈 수도 있고, 손을 잡고 기도를 할 수도 있으며, 촛불 집회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세미나를 할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형식이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믿음을 키워줄 수 있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앎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경험과 실천을 통하여 키워지는 것 같습니다. 뉴맨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연세인 모두가 이러한 경험과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변명-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사회 정의, 도덕, 윤리, 규범이라고 하지 않고 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분에게…
저 역시 하느님이라는 인간이 닮은 어떠한 존재가 그 어디에선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는(제우스와 같이…) 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정의가, 윤리가, 규범이 기독교 신앙인의 마음 속이라면 하느님(또는 하나님)이라는 신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려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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