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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학기 강규형 교수님의 근대유럽의 세계를 수강하고 레포트로 제출했었던 서평

제목 : 폭력에 대항한 양심-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
저자 : 슈테판 츠바이크
출판사 : 자작나무
서평 작성일 : 2002-05-29



관용의 목소리! 자유의 부르짖음!

‘종교개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루터와 칼뱅 두 사람이다. 그들에 대하여 ‘루터는 조금 변덕스럽고 감정적이었으며, 칼뱅은 냉정하고 완고했다’ 정도의 미약한 지식밖에 없던 나는, 칼뱅은 본받을 점이 많은 인물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날 강의계획표에서 “폭력에 대항한 양심-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종교개혁의 대표인물인 칼뱅에 대하여 알아야겠다는 의무감과 함께, 위에서 들었던 의문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레포트 교재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 책 본문의 시작은 제네바를 장악한 파렐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파렐은 “노골적인 폭력의 방식”으로 제네바를 개신교의 도시로 변모시키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그를 받쳐주는 튼튼한 교리가 필요했던 그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칼뱅을 찾아가게 된다.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내놓아 당시 개신교 신학자로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칼뱅은 그야말로 개신교 교리의 선구자였다. 저자의 “기독교강요는 나폴레옹 법전이 프랑스 혁명을 매듭지은 것처럼 종교혁명을 종결지은 작업이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칼뱅은 개신교의 교리를 가장 완성적으로 집대성한 사람이다.
파렐이 칼뱅에게 제네바의 종교적인 권리를 넘겨주는 이 부분까지 나는 칼뱅이라는 인물과 폭력이라는 단어를 서로 연결시킬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한번 형식화한 내용은 절대로 그 완강함을 줄이거나 변경시키지 않는”이라는 저자의 표현에서 아주 완고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그것이 폭력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아채는 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상적인 부분에 대한 완고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러한 ‘완고함’이 단독으로만 존재하였다면 폭력적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권력과 맞닿은 독단은 폭력적인 요소로 변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파렐의 권유로 제네바의 종교권을 장악한 칼뱅은 강력한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하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였고, 그것만이 진리라고 믿었다. 제네바 시에 살고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맞게 행동해야 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처벌을 받아야 했다.처음에는 이러한 생각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있었고 칼뱅의 독단은 시 당국과 끊임없이 마찰하였으며 잠시 제네바에서 쫓겨나지만 이러한 상황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혁명이 이루어진 공간, 특히 폭력을 통한 혁명이 달성된 공간은 ‘질서’를 잡아줄 그 무언가가 없다면 쉽사리 ‘혼란’의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때문에 시민들은 모두 질서를 잡아줄 그 무언가를 바라게 되고 칼뱅은 모든 권리를 넘겨받은 후에 다시 제네바로 입성한다.
이제 완벽한 독재 정치가 이루어진다. 시민들은 모든 행동을 감시 받으며 또 서로를 감시한다. 제네바에서 웃음, 축제, 비평, 토론, 예술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행위가 발견된다면 즉시 끌려가게 된다. 도덕 경찰관은 이러한 제도의 구체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제네바에서 ‘자유’는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카스텔리오였다. 그는 개신교를 따르기로 하였고, 그 때문에 프랑스를 떠나 칼뱅-정신의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에게로 향하게 된다. 그리하여 제네바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그는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당시 제네바에서는 칼뱅의 허락 없이 어떠한 책이라도 출판 할 수 없었지 때문에 그는 칼뱅을 찾아가 허락을 구하지만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칼뱅은 자신과 다른 방식의 성서해석에 대하여 정정을 요구하였고, 카스텔리오는 그것을 거부하였으며 결국 독재권력에 쫓겨 바젤시로 가게된다. 이것이 자유와 폭력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이 만남 이후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있던-하지만 서로를 의식하고 있던-자유와 폭력을 다시 부딪히게 했던 것이 세르베토의 화형이었다. 저자는 세르베토를 ‘신학의 돈 키호테’라고 칭한다. 부조리한 것을 위해서 싸우고, 광포한 이상주의를 위해서 현실의 모든 저항에 맞서 싸울 열의에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카톨릭과 개신교가 모두 받아들이고 있던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한 세르베토는 모든이의 이단자가 되고 만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비엔의 폴미 대주교의 주치의로 있었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받아줄 사람으로 칼뱅을 택하게 되고 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벌인다. 
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가! 자신의 생각 이외에 어떠한 것도 인정할 수 없던 칼뱅에게 그의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탄의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칼뱅은 사탄을 처단하기 위하여 카톨릭 교회에 세르베토의 신분을 노출시켰으며 그의 행위에 대한 증거물을 넘겨주었다. 세르베토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지만, 카톨릭이 칼뱅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는 찝찝함 때문에 감시를 느슨하게 하여 감옥을 탈출한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일이 끝난다면 세르베토는 진정한 돈 키호테가 될 수 없지 않은가? 
돈 키호테는 이제 적의 굴속으로 들어간다. 누가 강제로 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기발로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이제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칼뱅의 유도로 그는 재판관들 앞에서 개신교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자신의 주장을 끝없이 펼쳐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재판관들은 그를 종교적인 평화를 위협하는 악마적인 독선주의자로 보게 된다. 또한 차디찬 감옥 속에서 비인간 적인 대우를 받던 그는 점점 절제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계속된 재판은 그를 점점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였다. 결국 그는 끝까지 자기의 신학적 주장을 굽히지 않고 화형을 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카스텔리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명으로 쓴 ‘이단자에 관하여’를 통하여 그는 이단자라는 개념은 개신교의 가르침에 맞지 않으며 개신교는 모든 이에게 자유로운 성서해석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발맞추어 칼뱅의 ‘이단자 처단’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그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칼뱅은 카스텔리오를 처단하기 위하여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카스텔리오는 이에 대범하게 맞선다. 둘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순간, 그리고 칼뱅의 폭력으로 카스텔리오가 재판에 회부되어 위기를 맞게 된 순간, 카스텔리오는 한 생명체로서의 목숨을 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칼뱅을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기를 바라고,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생각은 절대로 옮은 것이며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진리를 자기 자신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칼뱅의 독단과 완고함은 많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였다. 단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얻었던 아내와 그에게서 태어난 아기, 이들은 그의 냉정함에 희생된 첫 번째 희생자들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사랑의 결여가 아닌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 말씀해주신 사랑을 그는 몸소 실천할 수 없었다는 것인가!
그에게는 ‘이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용서’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관용’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면 세르베토는 그렇게 잔인한 화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칼뱅의 성격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많이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크누트 베크가 쓴 글에 나와 있듯이 저자는 칼뱅에 대해서 공정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고, 논리와 지성에 의해서 잔인하였지 성격적으로 잔인한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서술하였다고 하지만, 이것이 칼뱅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나 자신도 이 글을 통하여 저자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카스텔리오에 매료되어 칼뱅의 냉철함과 독단을 가슴 속 깊이 비판함으로써 그의 인간적인 측면까지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복종, 강요, 광신, 독단, 독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칼뱅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그의 외양까지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칼뱅의 냉정하고 완고한 성격을 막연히 동경하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러한 칼뱅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카스텔리오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게 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러하였다. 칼뱅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전혀 반대되는 카스텔리오의 이미지는 그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부각시켰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대립, 폭력과 양심의 대립은 세르베토 처단이라는 촉매의 작용으로 인하여 활발하게 진행된다.
세르베토는 칼뱅의 조정으로 카톨릭에 의해 죽음을 당할 뻔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또한 제네바에서 재판에 회부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절대로 자신의 신학적 주장을 번복하지 않는다. 여기서 칼뱅과 세르베토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자신의 주장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세르베토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칼뱅에게 있었던 권력이 세르베토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세르베토를 죽음으로 몰아간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세르베토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카스텔리오가 내기 시작한 것은 독단과 폭력에 대항한 자유와 양심의 목소리였고, 관용을 바라는 인문주의자의 목소리였다.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된다. 신념은 자유이다.” 
이것이 제바스티안 카스텔리오가 말하고자한 핵심이다. 즉, 카스텔리오에게 있어서 세르베토의 주장은 범죄행위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신념을 말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세르베토의 주장을 믿고 따르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신학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스텔리오는 세르베토가 옳고 칼뱅이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칼뱅의 대응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칼뱅의 입장에서 세르베토가 옳지 않다면,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마음을 돌리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뱅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대응방식은 하느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 카스텔리오의 주장이다. 
결국 카스텔리오에게 있어서 범죄자는 칼뱅이었다. 그는 한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으며 이는 살인이다. 세르베토의 주장이 단지 자신의 주장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칼뱅의 주장이 단지 한 개인의 생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세르베토의 처형은 살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칼뱅의 생각은 달랐다. 시작부터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사상은 하느님의 그것이라고 믿었다.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칼뱅을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히고, 그토록 위해하게 편협한 자기확신”을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타고난 질서의 인간”이라고 평하였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있어야 했다. 그 제자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에 근거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라 여겼다. 결국 칼뱅 자신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발상인가? “내가 가르치는 것을 나는 하느님께 얻는다. 이 사실이 나의 양심이 된다.” 칼뱅이 추구하는 신정주의적 공화국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있었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서 세르베토의 사상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탄의 사상이었으며, 세르베토의 행위는 종교적인 범죄행위였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펼치는 것은 반역이었으며 그러한 의견을 내세운자는 죽어 마땅하였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었다. ‘하느님의 명예를 위해서’행해진 범죄자 처단법이었다.
실로 무서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칼뱅 자신의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과 절대적으로 맞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세르베토와의 의견대립에 있어서 그의 사상이 절대적으로 맞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대응방식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 언제 “나의 사상과 맞지 않는 사람은 죽음으로서 그 대가를 치루어라!”고 말씀하셨으며, 어디서 “너희는 나와 다르므로 죽어서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단 말인가! 칼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원수를 사랑하라!”, “일곱번씩 이른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말씀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저자의 말처럼 ‘미겔 세르베토는 그리스도의 명이 아닌 장 칼뱅의 명령에 따라 불태워진 것이다.’
세르베토의 화형 이후 카스텔리오는 끊임없이 칼뱅을 비판한다. 그의 비판이 강력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칼뱅의 논리로 칼뱅을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칼뱅을 고발하는 글에서 칼뱅이 쓴 “기독교 강요”의 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이단자를 죽이는 것은 범죄행위다. 쇠와 불로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은 인문주의의 모든 원칙을 부인하는 행동이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한 자가 이단자를 처단할 수 있단 말인가! 칼뱅은 권력을 장악하고 이 부분을 자신의 저서에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결국 권력의 힘이 그를 위선으로 빠뜨린 것인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하수인을 내세우는 모습, 불리한 상황이 오면 끊임없이 해대는 변명은 세르베토, 카스텔리오와의 대적에서 계속해서 보여줬던 그의 위선적인 모습이다.
반면 카스텔리오는 어떠한가? 그는 자신의 생각을 한치의 위선 없이 몸소 실천하였다. 저자는 카스텔리오를 “글에서처럼 삶에서도 관용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칼뱅과의 대적에서 그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용한 증거는 그의 언행일치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바로 다빗 드 조리와의 친분이다. 모두가 이단자라고 생각하던 다빗 드 조리를 그는 친구로서 받아들였다. 인문주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바젤에서까지 이단자로 몰려 “잔인한 기념식”을 치러야 했던 다빗 드 조리를 그는 끝없는 관용을 베풀었던 것이다. 베르나르도 오키노와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의 관용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회개와 용서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그대로 실천하는 모습은, 칼뱅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칼뱅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죽기 전에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후회할 기회를 주시라고 빌겠다. 그 죄가 언젠가 당신 영혼의 구원을 막는 일이 없도록 말일세.”
결국 칼뱅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폭력을 통한 강요가 아니라,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회개를 전제로한 용서. 이것이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고, 그분이 바라는 관용이 아닐까?
이 책은 칼뱅과 카스텔리오를 극명하게 대조한다. 자만심에 사로잡힌 사람과 자유롭고 거침없는 인간으로, 교조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천성으로, 지배욕에서 협박과 명세를 하며 소리지르는 것과 순수하고 깨끗한 양심에서 온건한 어조로 말하는 것으로 둘을 극명하게 대립시킨다. 이는 카스텔리오의 끝없는 관용, 칼뱅에게까지 적용한 관용에 대한 저자의 믿음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저자는 현실이 칼뱅의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어떠한 사상도 절대적일 수 없다고 말한, 즉 누구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는 카스텔리오의 사상을 현실에 의해서 거부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 왜 이러한 생각이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었던가. 왜 카스텔리오가 아닌 칼뱅의 뜻대로 모든 것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가. 저자가 말한 현실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류는 참을성 많고 공정한 사람이 아닌 도발적이고 자신의 진리가 유일하다고 믿으며 자신의 의지가 세계 법칙의 기본 공식이라 할 수 있는 편집광들에게만 굴종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혼란 상황일수록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칼뱅에게는 기쁜일이고, 카스텔리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당시는 혼란 상황이었다. 모두가 기존 카톨릭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봉건체제에서 받았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타고 있었다. 이러한 욕망은 말 그대로 무질서를 창출하기 쉬웠다. 이러한 부분은 이 책을 통하여 잘 확인할 수 있다.
칼뱅이 제네바에서 잠시 쫓겨난 당시 그 도시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도시는 신앙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혼란상황에 빠져들고 말았으며, 그 틈을 타 카톨릭 교회가 다시 그 도시를 자신의 지배권으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시민들과 칼뱅을 쫓아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시 당국은 이러한 무질서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결국 칼뱅의 “강철같은 기율”을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그가 요구한 것은 자기의 확고한 사상을 따르는 순종적인 복종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당시의 상황과 시민들의 요구는 이 독선적인 인물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제네바만의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기독교를 믿고있던 거의 모든 유럽이 비슷한 상황 속에 빠져있었다.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사상들과 새로운 개신교들, 절대적 기준 없이 여러 방향으로 해석되고 적용되는 기독교 교리들이 많은 유럽의 기독교인들을 혼란과 무질서의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기존의 부패한 카톨릭의 교리,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자유의 움직임을 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급격히 나타난 무질서한 자유에 대하여 두려움에 떨게 되는 딜레마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이단자는 처단되어야 한다”는 명제로 연결된다. ‘이단’이라 불리었던 사상들은 혼란을 야기하는,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곧 두려움으로 연결되었으며, 두려움은 저항으로, 그 저항은 “이단 제거”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누가 “자유”와 “관용”의 사상을 쉽게 거론할 수 없었을 것이며, 어떤 이가 그 사상을 선뜻 지지할 수 있었겠는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상의 자유와 종교적인 관용은 “이단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분열을 야기하는 것이었으며, 분열은 또 다시 무질서, 혼란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사상의 혼란을 벗어나게 해 줄 절대적인 무언가를 바라고 있던 당시 유럽사회에서 카스텔리오의 사상은 사회를 끊임없이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트려 버릴 것 만 같은 위험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결국 무질서, 혼란에 대한 두려움이 자유와 관용을 눌러버린다. 칼뱅의 질서가 카스텔리오의 자유를 눌러버린 것이다.
또한 기득권이라는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다. 여기에서 세르베토의 사상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세르베토의 비극은 그의 사상이 당시 기독교의 어떠한 기득권 층과도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카톨릭, 칼뱅, 츠빙글리 할 것 없이 당시 기독교의 기득권을 잡고있는 모든 교리에 반하는 세르베토의 사상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기존의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무서운 생각이었다. 받아들인다는 개념에 앞서 개인의 사상으로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재세례파의 교리 또한 기득권 층에 있어서는 세르베토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를 하나의 사상으로 인정해주자, 관용을 베풀자는 카스텔리오의 사상은 기득권 층에게는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위험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존에 있던 무언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지금의 구조를 뒤엎을 수 있는 안정적이지 못한 사상인 것이다. 그들에게 카스텔리오의 사상은 세르베토의 그것보다, 다빗 드 조리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카스텔리오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어떠한 사상도 이단으로 몰아 처단할 수 없을 것이며, 사상이 난무하고 기존의 교리는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안정적인 기반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이다. 기득권 층에게는 안정이란 필수적인 요소 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안정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려 든다. 억누르고 짓밟는 것이다. 이것이 카스텔리오를 대하는 칼뱅의 생각이었고 그의 행동 방식이었다. 
결국 현실은 카스텔리오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결국 극과 극은 통한다. 극단적인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극단적인 사회주의가 싹틀 수 있듯이 어떠한 극단에서는 다른 극단이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칼뱅의 “신정주의적 독재체제, 교조적인 성서정치, 냉혹하고 철저한 질서와 금욕주의”는 그 자신의 성격이 그러했듯이 극단으로 치닫고 만다. 이 극단은 독재가 된다. 그런데 언제나 그러하듯이 독재의 억압 아래에서는 그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독단, 독재 아래에 굴종이 있다면, 자유와 관용의 사상은 자유를 갈구하는 저항과 함께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칼뱅이 죽고난 뒤-‘완전한 자유’를 부르짖었던 카스텔리오의 사상을 불러오게 한다.
여기서 의문을 가질 점은 카스텔리오의 사상의 자유, 다른 사상에 대한 관용이 극단인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 관용은 대립되는 사상 사이에서의 중도라는 말과 연결이 되는 온건하고 중립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자유와 관용은 독단, 억압, 강요의 반대개념으로써 완전한 생각의 자유, 자신과 대립되는 사상에 대한 관용을 말하는 극단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칼뱅의 극단은 카스텔리오의 극단을 불러오고, 이 또한 정신적인 억압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에서 나온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관용’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사회 속에 극단적인 하나의 사상만이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발전하기 힘들다. 여러 가지 사상이 인정되고 그들간의 투쟁이 계속될 때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현재 남한의 정치는 어떠한가! 우파의 사상이 거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남북이 휴전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정말이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라는 발언이 이제는 합법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 또 그에 따른 행동을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사회주의가 더 우세한 사상이고, 내가 그 사상을 따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한 흐름을 이끌고 있는 사상이며, 그 사사의 강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는 보수만이 존재하고 있다.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들만이 집권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안정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지배적이다. 휴전의 상황에서 안정, 안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좌파의 배격, 진보의 배격과 연결되는 것은 무리-사회주의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안보가 무너지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가 있지 않을까? 또한 안정을 위하여 사회주의를 배격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발전이란 측면이 너무 커다란 기회비용이 되지 않을까? 
많은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 빨갱이 논쟁. 이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과 전쟁에 대한 피해의식, 오랜 기간 동안 수구세력들에 의해 쇠뇌 당해 더욱 강렬해진 이러한 생각들은 새로운 사상의 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세태가 영원히 정치적 독단으로 연결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이제는 관용의 정신을 배울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국면으로 접어들었고, 큰 범주로 보았을 때 하나의 사상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 사상에 대한 관용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본다. 
북한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이슈화되고있는 “주적론 논쟁”은 아직 관용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남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참혹했던 전쟁만을 기억하여 같은 뿌리를 두고있는 한 민족이 서로는 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생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적대시 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서로 조율해 나갈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
현재 대통령 후보 사이에 국가보안법 폐지와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 보수당 자치단체장 후보는 TV토론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이제 남한에도 사상에 대한 관용의 정신, 북한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제 한 사상만으로 이끌어져 나가는 세상은 끝이 났다. 세계에 눈을 돌려보아도 냉전체제가 종식을 선언한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극우파의 수장이 피격을 당하는 등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경향도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다양한 사상의 인정으로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야흐로 독단의 시대는 끝이 나고 관용, 자유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관용, 북한에 대한 관용을 전제한 후에야 진정한 사회발전, 올바른 안보체제구축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서평을 마치며,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칼뱅의 독단이 아닌 카스텔리오의 관용이 받아들여지고 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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