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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의 '비움'

Athos 2005. 7. 27. 00:00

비움

틱낫한 지음 | 전세영 역 | 중앙M&B 펴냄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아니 그 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아마도 나의 짧은 삶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나는 "비움"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지난 달 하나의 현실적인 의무를 다한 후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숨가쁜 달리기를 잠깐 멈춘다"

표지에 쓰여있는 이 문구를 본 것은 책을 다 읽은 후였지만, 이 책을 집어들 때 나 역시 잠시 멈추고 싶어했던 것 같다.

사실 '저 뒤에 앉아 한숨 돌리는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노래가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가 저 문구를 책을 펼치기 전에 보았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투쟁"

대학에 들어와 즐겼던 단어이다. 단어 그대로 다분히 전투적이다. 무언가와 싸워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에 가득차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잠시 멈춰 심호흡을 하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기개발 서적 처럼 개인의 안위를 위한 휴식, 여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타적인,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자아/탈자아적인 여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자신만의 여유를 챙기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여유와 함께 상대방의 여유, 상대방의 마음 비움을 기다려 주라고도 이야기한다.

'여유'에 대한 가치, 그리고 그 여유를 통한 평화에 대한 가치. 나에게는 아주 작았던 그것을 저자는 "가장 큰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나를 놀라게(또는 기쁘게?) 한 것은, 스님인 저자의 종교관(?)이었다.
우선 그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부처보다 예수를 먼저이야기 하기도 하였고, 평화를 위하여 꼭 불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뜻"으로 몰아가지도 않았고, 부처의 말을 과도하게 인용하지도 않았다.

또한
(물론 그가 참여 불교를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모든 불자들이 다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수도 있고, 이 책을 통해 본 것은 불교의 아주 작은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생각을 통해 본 불교는 비교적 인간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내세가 아닌 현세의 극락,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이 땅위의 하느님 나라, 천국.
그의 종교는 죽은 후의 안위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 지금 이 땅 위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인 듯 했다.
극락, 천국에는 완벽함만이 가득하리라 믿고 있는 많은 종교인과는 달리, 폭력과 고통이 있지만, 자비와 이해와 사랑이 있는 곳이 신의 왕국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지...

명상, 비움, 고통, 이해, 자비, 그리고 평화.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이 키워드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P. ?? 그대는 그대의 감정 이상의 것입니다.
P. 114 끼어들어 부인하고 잘못을 지적하면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P. 115 공포는 무지를 기르고 이해는 자비의 꽃을 기릅니다.
P. 206 부처님이 살아계신 동안에도 승가가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입니다.
P. 243 신의 왕국은 폭력과 고통이 없는 곳이 아니라 자비와 이해와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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