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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밤을 새우다 싶이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바보같이 일히일비 했다. 간격이 넓혀진다 싶어서 흥분했었고, 다시 좁혀진다 싶으면 소름끼쳐했다. 그러다 역전을 허용하고, 결국에 차이가 벌어지면서 TV를 끌 수 밖에 없었다. 마치 프로배구 결승전 마지막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포츠를 본 것인가? 아니다. 지방선거는 스포츠가 아니다. 재미있게도 선거가 끝나고 투표함 뚜껑이 닫히는 순간 이미 선거라는 Game(?)은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는 것이지만, 뚜껑을 어떻게 여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일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뚜껑 여는 개표방송을 보면서 내 머리의 뚜껑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근소한 차이. 너무나 근소한 차이. 선거를 몇 번 다시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만한 그런 차이였다. "아....아쉽다.... 한 끝 차인데.....뭔가....조금만 상황이 달라졌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데, 1위를 한 후보도 50%를 넘지 못했다. 그렇다는건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다른 후보가 있다는 것인데.......
"아!....."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노회찬이었다. 날 고민케 했던 그. 많은 이들에게 질책을 받을 그. 내가 버린 그가 생각났다.
그를 떠올리며 느낌표(!) 이후에 말줄임표(......)를 쓸 수 밖에 없는 나.


그를 위한 변명

이 시점에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시기로 돌아가 보자. 선거가 축제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갔던 그 때, 관심 없는 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그 때로 돌아가 보자. 선거 바로 전날, 후보 단일화를 통해 노무현의 1위를 되찾아 주었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유는 차기 대권 후보에 대한 의견차이. 뭐, 이유야 어찌되었던 노무현 진영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단일화 전, 2위, 3위로 떨어져만 가던 지지도를 단위화를 통해 1위에 가깝게 끌어올렸었기 때문이다. 큰 파장이 일 것이라 생각했고, 노무현 지지자들의 걱정을 커져갔다.

하지만 대선의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부족한 나의 판단으로는, 노무현이 낙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위기감이 오히려 부동층을 지지를 이끌어 준 것이라는 결론이 더욱 그럴듯 하였다. 확고한 정몽준 지지 세력이 노무현에 반하는 표를 행사하거나, 선거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층, 또는 얕은 수준의 충성도를 가지고 있었던 유권자들이 노무현 낙선에 대한 불편한 상상 속에 노무현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보였다.

선거는, 적어도 우리나라의 선거는 이런 것이다. 부동층의 움직임이 당락을 좌우한다. 전통적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반해, 중도 보수(? 이런건 항상 상대적인 것이지만......)성향의 민주당의 경우에는 그러한 부동층의 표를 어떠한 방식으로 확보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민노당, 참여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민노당, 참여당 지지층들의 표를 흡수하였다."라는 의미를 넘어, 또는 그 의미 보다는, "현 정부 심판을 위해 많은 이들이 뜯을 모은 정당이니 여기를 좀 봐 달라!!!"라는 부동층에 대한 호소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진보신당이 그들과 함께 했다면, 또는 심상정 전 의원 처럼 중도에 후보를 사퇴하고 지지를 선언했다면 선거 결과가 바뀌었을까?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다.

고민끝에 한명숙 후보를 선택한 나 조차도 한명숙 후보가 이만큼이나 선전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었다. 보수 언론에게 당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부동층이 움직여 한명숙을 지지한 힘이 아주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회찬 후보다 한명숙 후보를 지지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나의 선택을 아주 쉬워 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회찬 후보의 1만 3천여표가 한명숙 후보에게 이동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더군다나 한명숙 후보의 46.8%가 지켜졌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부동층의 심리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한명숙 후보의 패배를 걱정하던 부동층의 움직임이 단일화로 인해 둔해 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 모두 그저 추측일 뿐이다. 해보지도 않았고 이미 역사가 되었으니까......


변명보다 가치있는 그의 의미

그렇다."노회찬이 단일화를 해 줬다고 해도 이길 수 없었을 수도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고, 이제와서 누구 탓이니를 가려내는 것이 많은 것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결과를 잘 해석하여 희망을 찾아가야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결국 노회찬의 백의종군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단일화 여부가 선거에 영향을 주었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그는 왜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는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주 적절한 글을 써 주신 분이 있어 그분의 글을 우선 링크하고자 한다. "누가 노회찬과 진보신당에게 돌을 던지나 http://bit.ly/bLmcta"

나는 위의 글보다 좀 더 쉽고 단순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대안"이라는 단어가 있다. 무언가를 대신할 안을 이야기 한다. 민주당이, 단일화된 민주 후보가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부동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움직이도록 하는데 있어 노회찬이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노회찬을 찍은 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땐 다 똑같아. 뭐 하나 맘에 드는 인간이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노회찬은 하나의 "가능성" 이었다. 선거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해 준 소중한 후보였다. 그가 있어 지방선거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던 사람들, 그가 있어 "다 똑같은 사람들은 아닐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감히 말한다. 중요하지 않지만, 성급하게 말한다. 아주 소수일 지도 모르지만 그가 있어 한명숙을 찍은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 할 것이다.)

그는 그러한 존재였다. 이번 지방 선거에 있어 분명히 의미있는 존재였다. "민주 진보"세력의 "총" 단일화를 이루어 내는데는 "걸림돌"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민주화를 위해, 대의를 위해 싸워낸 투사였다.

선거는 스포츠가 아니다. 선수 개인의 능력, 또는 팀의 능력으로 득점을 하고 승패를 결정 짓는 스포츠가 아니라, 관중들의 관심을 끌고 호응을 얻어야 결국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우리는 이번 경기에서 승리했다. "단일화"라는 대의를 찾아낼 수 있었고, "다양성"이라는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은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었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대안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와 같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뭐 하나 맘에 드는 인간이 없다."는 말을 뒷받침해 주는 현실 정치의 모습을 이제는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실천을 통해 표현하였고 또한 목격하였다.


그를 향한 박수와 질책

과거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02년 대선의 민주노동당(당시 진보신당과 한 몸이었던.....) 대통령 후보는 권영길 의원이었다.
나는 그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지만, 그의 선전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득표율은 4%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노회찬 후보와 같이......물론 조금 부족해 보이는 수치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고 또 17대 총선이 증명했다. 민노당을 향한 13%대의 정당 지지율. 여기서 우리는 가능성을 보았고, 언젠가 진정한 정권 교체가 가능하리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는 우리 민주노동당이다."0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들이 있기에 가능성을 보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아쉽기는 하지만 진보신당의 창당을 욕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노회찬 후보가, 진보신당이 좀 더 노력하여 진정한 진보정당의 지지율을 되찾아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의 "우리"는 대중이어야 하고 전 국민이어야 한다. 13%의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 냈던 그때를 기억하며,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던 그 때를 기억하며 다시 한번 대중에가 다가갈 준비를 하여야한다. 

노회찬 후보의 3% 득표가 배타적인 "우리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던지는 돌을 조금이나마 막아내고 싶다. 나의 믿음을, 많은 이들의 믿음을, 그리고 "우리"의 기대를 보고 듣고 느끼는 그, 그리고 진보신당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단일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진보신당이 많은 표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그들에게는 큰 과제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는 이들은 진보신당을, 또는 노회찬 후보를 배타적인 정치세력이라 보고 돌을 던지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이 알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운동을 해 주었으면 한다.

몰라주는 대중을 우민이라 탓하기 이전에 그들과 하나되기 위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좀 더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피곤하자.

많은 이들이 밤을 새웠다. 많은 이들이 피곤하다. 비단 어제와 오늘 뿐만 아니라, 갖가지 방식으로 정치를 말하고 정치를 실천한 우리 대중들은 오늘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희망을 찾고 있기에 피곤을 감수했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늘 이렇게 피곤할 수 있다. 이 피곤함이 개운함으로 변하는 그 날을 기다려 본다.

큰 판을 보았을 때 승리를 했다? 심판을 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피곤함이 그 언젠가의 개운함으로 바뀌는 것이다. 승리의 길을 지금부터 한발 한발 나가는 것이다.

피곤함을 만들어준 희망의 후보들 모두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앞으로 좀 더 피곤하자. 너도 나도, 스스로가 좀 더 피곤하자. 남탓은......화장실에 가서 씻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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