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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Athos 2004. 6. 14. 00:00
이미 영화를 본 지는 오래 되었지만......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이렇게 평을 써 본다.




모든 영화 평이 그러하듯 제작자의 의도는 어떠했든,-종교적으로 아주 불경스러운 짓이 될 지는 모르지만-성서가 담고 있는 진리가 무엇이든,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예수가 율법학자에게 끌려가기 전 심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자.
누가 그를 신이라 하였던가? 삼위일체 교리를 따르자면 그는 하느님과 하나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라! 이는 그가 인간임을,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그의 곁에 나타난 악마를 보자. 장화홍련과 같은 귀신이 그를 찾아온 것이었을까?
예수라는 불완전한 존재의 마음속에 있던 또 다른 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악마나 귀신이나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심적인 존재가 아닌가!(God 역시 마찬가지 이며……)
(이 글을 쓰면서, 특히 이 대목을 쓰면서, 불경스러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의 오만을 동원하여 계속해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악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기(이 역시 악마였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아기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모습 또한 악마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장면은 소름 끼치는 웃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의 마음속 가장 순수한 부분까지도 악마적인 본능, 악한 마음, 이기적인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매를 맞으며 육신의 고통을 이겨 내고 있는 그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어때한 존재가 소리 내어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예수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단 말인가?
왜 그토록 불완전한 존재를 믿고 따르려 하고 있는가?

그는 인간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내가 진정한 신이다. 나만이 너희를 구원할 수 있고, 나만이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다. 나의 전지 전능함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질 것이다.”
예수는 위와 같은 오만한 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육체적인 고통에 소리 지를 줄 알았으며, 심적인 고통에 몸서리 칠 줄 알았다.(성서에서 표현하기를 “하느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저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 하지만……”이라 하였다 한다. 이를 통해 그가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음은 알 수 있으며, 그만큼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고통을 이겨낸다. “하지만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소서.”
정말 힘든 결정이었지만, 진리를 따르고 정의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는 다른 인간들에게 자신들도 그러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예수가 하늘나라에 올라갔으므로 다른 인간들도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의 형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무신론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에게, 대학 선배의 한 마디는 그 인식을 가능케 했하였다.

“GOD이 인간과 같은 형태-여기서 God이 인간의 형태인지, 인간이 God의 형태인지 등의 종속관계(?), 선후관계, 상화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진리를 인간이 God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내고,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 있듯이 God/악마/귀신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심적인 존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진리가 담겨 있는가, 어떠한 진리가 담겨있고 왜 그런 진리를 담으려고 했는가 일 것이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제목과 같이 예수는 수난을 당한 것이다. 수난은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고, 예수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고통을 느꼈을 것이며, 인간이기에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모자라기에 나는 그러한 큰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겠지만, 부족한 인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수의 모습을 통하여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불완전하면서도 완전한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였고,
그러한 존재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예수는 삼위일체 교리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따지자면 성서의 많은 부분이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거짓의 가치에 대한 관점에서……)
그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 나름대로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예수가 God과 같은 뜻에 서려고 했다는 것,
둘째로 “나”라는 인간 역시 God과 같은 뜻에 설 수 있다는 것,
셋째로 그러한 God의 뜻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 자신이라는 것.)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으며,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직 모자란 인간인 우리 모두가 예수의 삶을 본받을 수 있다면, 비록 오랜 시간과 많은 희생이 따를 지라도,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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