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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이란다. 여성의 날인만큼 여성 관련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넘어가려한다.


1. 여가부의 일이라고는....

한국에는 여성가족부(여가부)라는 국가기구가 있다. 여성, 청소년, 아동,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인터넷을 중심이로 여성가족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그 중 하나가 "여가부에서 하는 일이 게임 못하게 하는 것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물론 여가부가 무슨일을 하는지 다 살펴본 다음 하는 지적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정책에 대한 불만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의역을 하자면 "유해성을 근거로 하여 인터넷 및 페키지 게임에 대한 지나친 제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불만일 것이다. 문화에 대한 보수성의 정도 차이, 게임의 본질에 대한 시각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런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저런 비판을 하는 이들이 "여가부가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없어져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나 자극적인 게임하게 해줘"로만 들리게 되면 때쓰는 집단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대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순간의 나는 대상을 보는 입장에서 대상과 제3자에게 보여지는 입장으로 역할이 바뀐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여가부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또 다른 문제.....)


2. 특정 집단을 위한 정부기구!

두번째 비판은 "여성가족부는 특정 직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위헌적이다"는 것이다. 그럼 "농림축산식품부"도 위헌일까? 여가부든 농림부든 특정 집단과 "관련한" 정책을 수행하는 공간은 맞다. 하지만 이것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는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구성집단의 이익과 권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어느 한 편의 이익과 권리가 다른 한 편의 그것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서 조율하고 문제 해결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국가의 중요한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정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구성원이나 집단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틀과 방향을 잡아주어야 할 상황은 없는지에 대하여 고민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가족부는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와 소수집단을 위해 존재함과 동시에,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지위를 다른 이들과 평등한 위치까지 올려 놓음으로써 사회와 국가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절대 위헌적이지 않다. 다만 보호받아야 할 상황도 아닌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려 한다면 분명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보호 대상인가?


3. 여성 상위사회?

나도 여성부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여성이 보호대상이 아니고 평등한 위치에서 차별받지 않으면 살기 때문에 여성부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런 세상인가? 누군가를 여성 상위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소개팅에서 밥을 안 사고, 연애할 때 차를 안 사고, 결혼 해도 집을 사지 않고 받기만 하는 존재라서. 그러면서 모든 기회를 균등하게 받고, 성적도 좋고 학점도 좋고, 취직도 잘 돼서. 그래서 여성이 절대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특권을 누리는 존재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다른 측면에서 보자. 학점도 좋고 남자들에게 과도한 "보호"마져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 관료, 국회의원, 기업의 임원, 유명 방송인, 스포츠 지도자. 얼마나 많은 여성이 그 자리에 있는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사회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가야하는 사람들 중 여성이 절대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공부도 잘하고 보호받던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이 어느정도 위치까지 와 있느냐는 말이다. (2016년 현재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45개국 중 115위,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36%를 기록했다고 한다.) "높은 위상"의 대접이 아니라, 그져 공부잘해서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보호를 잘 받아야하는 육체적으로 약한 대상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사회인 가정 안에서도 "여성이 가장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어색한 문화를 살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4. 역할 구분은 필수가 아닌가?

생물학적 차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주어지는 생물학적 성 역할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회/문화적 성 역할을 강요 받아서는 안된다. 남성적임과 여성적임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죄악시 되거나 "부자연스러움"이 되어 버리는 사회는 여성적인 남성과 남성적인 여성을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해 버리고 만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2진수의 값처럼 0과 1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1이고 누구는 0이어야 한다는 틀 안에서 실제로 1이나 0의 값을 가진 남성적인 남성과 여성적인 여성이 존재하기는 할까? 가장이 남성이여야하고 큰 틀을 보는 것은 남성이 해야하고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고 세심하게 배려는 여성이 해야한다는 많은 이들에게 부담이 되는 강요이지만, 많은 이들이 남에게 떠넘기는 부담이고 강요가 되는 세상이다. "대체적으로 그런 것"과 "통계적으로 그런 것"의 무게감은 이 사회를 살고있는 모두에게서 가장 중요한 자유 중 하나인 정체성의 자유를 빼앗아간다. 나의 역할 뿐만아니라 성격 마져도 규정되어 있는 사회 보다는, 나의 성격에 따라 맞는 역할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날 여유는 "정상적인" 나에게만 강요되는 여유가 아니라, "자유로운" 모두에게 주어져야하는 여유인 것이다.


5. 불편하게 하지마라.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면 불편해진다. 남성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남성에서 "남성이 여성적일 수도 있다"는 말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여성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여성에게도 "여성이 남성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성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여성에서 "여성은 여성적이여야한다"는 말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여성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남성에게 "남성은 남자답게"라는 말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자연스러웠던 것이 남에게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서로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각자의 자연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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