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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촛불 들기'와 '"나" 까기'

Athos 2008. 5. 28. 20:52

촛불 문화제, 촛불 집회......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려나......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련다.


0. "
댈옹아 우리 2002년 처럼 다시 촛불 들자! 3일 연짱 들었다~ 같이 가자잉"

 

친구의 글에 눈물을 흘린다.

내가 부끄러워 눈물을 할린다.

나의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이런 나를 친구로 여기고 느낌표를 찍어가며 제안해 주는 친구가 있음에 눈물을 흘린다.

 

"동지를 위하여"를 들으며 흘리는 눈물이 동지가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인 것과 같이......

나는 또 이렇게 소시민적으로 싸구려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쓰고만 있다.

 

 

 

 

 

0. 누군가는 이야기 한다.

"세상이 그렇지만은 않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살아보니 알겠더라. 그렇더라. 세상을 모를 때 했던 작은 운동들을 알고 나니 못하겠더라.

상황이 허락해 주지 않더라......"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일수도 아니면 너 자신일 수도 있다.

다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또는 내 머릿 속에 그런 말이 떠오를 때면) 이렇게 외치고 싶다.

""를 비판하라......!!!

 

 

 

 

 

1. 비판 받아 마땅하다.

나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스스로에게 당위를 부여한 것도 많다. 해야 하는 것이 많다.

나에게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많다.

때문에 나는 여기에 이렇게 소시민적으로 앉아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지 않은 그 이외의 것들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1. "불구하고"하는 것이다.....

"때문에 못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 자신도 그런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하고 정당화 한다.

상황 때문에 못하고, 성격 때문에 못하고,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움직이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격상 선뜻 나서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못 한다"라는 말은 "안 한다"라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움직이는 이들을 향한 "세상을 모르는 자들"이라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 나는 향한 화살로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결코 세상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생각이 없고 어리석고, 아직 세상을 덜 살아본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실천하는 자들인 것이다.

 

 

 

 

 

1. "비겁한 나"를 돌아보자.

나를 정당화하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 돌아오는 화살을 피하거나 막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살은 아프고 정당하지 못하는 생각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갈라지는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정당화의 끝에서 느끼는 찝찝함과 화살을 피하여 찾은 안식처의 음울함에 빠져 세상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나는 비겁하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되뇌인다. 나는 비겁하다.

이런 ""를 비판하고자 한다.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 하는 나는 비겁하다. 두려움에 몸서리 치는 나는 비겁하다.

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타인의 정체성은 왕도가 아님을 역설하는 나는 그 누구보다 비겁하다.

 

 

 

 

1. 역할 갈등의 끝에서......

자기 정체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나름대로 자기 정체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위치를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판단하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자존심도 강하고 반드시 성취해야겠다는 야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의 역할과 정체성을 짖밟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인다.

한 방향으로 살고 있는 내가 세상에 순응하고 있다고, 내가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세상을 잊어버린, 또는 모르는 사회적 지진아는 아닌 것이다.

남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나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유아적인 두려움에 갖혀, 내 삶을 끊임없이 긍정하고 남의 삶을 부정하려는 흑백논리를 몸소 실천하지는 말아야겠다.

 

역할 갈등의 끝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치들 중에 하나를 선택한 그 지점에서,

그 잘난 자신의 머리에 갈등을 자리잡게 했던 선택받지 못한, 아니 선택하지 않은 그 가치의 고결함과 숭고함에 침을 뱉는 행위는 하지 말자.

 

 

 

 

 

1.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소시민적인 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에서 흐르는 싸구려 눈물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친구에 대한 가치없는 걱정의 한마디를 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들으면서 나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해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저 녀석 또 저러고 있다."라는 '하하'식의 비판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그러한 비판을 먹으며 나 징역을 다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내 소시민적임에 대한 징역살이는 진심어린 자기반성과 끊임없는 되돌아봄을 통해, 소시민인 아닌 내가 되었을 때에나 끝나게 될 것이다.

 

 

 

 

 

1. 나는 어리석다.

나는 어리석다. 움직이지 못하므로 어리석고, 지금 이렇게 글만 쓰고 있으므로 어리석고,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치지 못하므로 어리석다.

 

 

 

 

 

1. ""를 비판하라!!

내가 여기 있음을 비판하라. 나의 정체성 확립을 넘어 정당성 확보를 위해 힘쓸 힘이 있으면 ''의 비판에 쏟으라.

"내가 이럴 수 밖에 없음"을 정당화 하기 보다,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함"을 고민하고자 한다.

끊임 없이 자신의 방어하며 음울한 구멍으로 나를 몰아가고 싶지는 않다.

끊임없이 나를 비판하는 속에서 소시민을 탈출할 구멍을 발견하고자 한다.

 

 

 

 

 

온갖 움직임(촛불을 드는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에 힘쓰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지지를 보낸다.

그러면서 그러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을 질타하고 또 질타한다.

 

 

 

 

여러분....부디...""를 비판해 달라......


(사족: 오오...광우병 보다는 '수입'과 '협상'의 정당성에 눈길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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